손상되어 배송된 가구의 replacement 를 요구하기 위해 찍은 사진

미국에 왔을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 줄 몰랐다. 영어는 초등학생 때나 좋아했고, 고등학교 수험기간이나 대학생 때 영어원서를 읽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찾아서 공부를 한 적도 없었다. 한국 안에서 한국어만 잘하면 되지 않나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지막 직장은 영어로 된 공문을 읽고 답신을 보내는 해외팀이었다. 그렇다고 외국인과 영어로 유창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영어로 된 문서를 읽고 파악하는 것만 할 줄 아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영어만 쓰는 곳에서 오랫동안 살 줄이야 알았겠나. 

미국 생활이 시작되기 직전에, 남편의 컨퍼런스 논문 발표를 위해 시카고에 올 일이 있었다. 다양한 미국인과 외국인을 만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식당에서 뭘 주문하는 식의, 관광지에서 하는 영어가 뭐가 어렵겠냐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 영어권 외국인을 접할 일이 없었던 데다 상대방은 내가 흔히 들어본 영어 발음이나 억양은 쓰지 않았고, 계속 "정해지지 않은 말(책에 있지 않은 패턴의 말)"을 하다 보니 영어를 들을 때마다 얼어붙곤 했다. 처음에는 "뭐라고요?"라고 하며 이야기를 되묻는 것도 "pardon?"이라고만 했던 것 같다. 그럼 상대방은 똑같은 말을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억양으로 되풀이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의 첫 정착지는 아시아인이 많은 네바다 라스베가스였다.
한국문화를 많이 접해본(정확하게는 한국인 친구가 있는) 외국인이 주변에 있었고, 한인마트도 있었고, 차이나타운이 제법 발달하여 아시아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외로울 겨를도 없었고, 아시아인들을 생소해하는 사람들이 드물었으며, 입맛이 너무 안 맞아서 떠나고 싶다거나 지루할 틈도 없었다. 
그렇게 라스베이거스의 삶이 4년 차가 될 때 쯤,  내 딴에는 '이정도면 영어도 많이 알아듣고 어렵지 않은걸?' 하며 기고만장해 있었다. 아이의 preschool도 비교해가며 제일 아이에게 성향이 맞는 곳을 고른다거나, leasing office(management team이라고 해야하나) 직원들이 친절하며 안전하고 내부가 잘 정리된 아파트를 고르는 것과 같은 일은 그 즈음에 이미 여러번 경험하면서 삶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4년차가 지나갈 때쯤부터 시작된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잘못되고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서 클레임을 거는 것'이었다.



어쩌면 ‘클레임’이라는 표현은 보험과 같은 서비스를 주고받는 상황에서 쓰는 표현이겠지만, 일상에서 잘못된 것에 대해서 여러 번 말하며 요구를 해야 할 경우가 생각보다 꽤 있었고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미국생활 초반 혹은 그 이전의 나였더라면, 제대로 보상(교환/환불)을 요구하는 것이 '진상 손님'처럼 보일 것 같다거나 굳이 서로에게 불편한 마음만 남을 일은 하지 않고 싶어서 '내가 손해를 보는 편'으로 모든 책임을 경감했던 것 같다. 심지어 물건에 대한 반품 신청을 하는 것조차도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그냥 다음에는 이런 구매를 하지 말자는 값으로 치자.'는 식으로 교환/환불 요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년간 미국생활을 하며 '내가 잘못된 것에 대해서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값은 값대로 지불하면서 불만만 쌓이고, 때로는 가족에게 나쁜 영향이 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조금씩 바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은 '불만의 표현'에서부터 시작된 것만 아니었다. 처음에는 '탐색을 통한 비교'의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일단 어떤 상황이든 일어나려면 사람을 만나야 시작이 되지 않겠는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매해 올라가는 아파트 렌트 비용을 줄이거나 이직을 이유로 집을 옮겨 다닐 일이 많았다. 대다수의 한인들이 여러 웹사이트의 조언에서 얻는 것처럼 일단 'greatschool' 점수가 높은 곳 위주로 찾았다. 보통 학교 점수가 좋은 동네들은 치안이 좋은 편이었다. 한 지역에서 오래 살기를 바라며 초/중/고등학교의 점수가 모두 좋은 곳을 찾다 보면, 그 범위는 매우 협소했고 싱글하우스가 아닌 아파트를 찾는 것은 더 어려웠다. 가깝다면 직접 방문을 했고, 멀다면 구글을 비롯한 여러 웹사이트의 주거경험이 있던 사람들의 리뷰를 참고했다.
어린이집을 찾는 방법도 비슷했지만 오피스의 분위기나 선생님 및 학급 분위기를 직접 관찰을 하며 비교하고, 내 아이에게 더 잘 어울릴 환경을 선택했다. 그런 관찰 이후에 시작된 것이 '집 구매'과정처럼, 렌더나 리얼터를 찾는 과정에 이어지기도 했다.

미국생활 3년 차에 상대방의 신호 위반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차를 전손처리를 해야 할 일이 생겼었다. 차량 보험을 어떤 식으로 가입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주변 사람들의 '차 사고는 웬만해선 날 일이 없으므로 몇 가지 조항은 들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에 따라 보험을 설정했던 것이 독이 되었다. 상대방의 차량 보험이 안 좋을 수 있다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 사고 이후로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괜찮다더라'하는 것은 조언으로 듣되 그것이 최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직접 모든 정보를 찾게 된 것도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로컬 사람들의 평판과 평가, 소개'로만 의존해야 할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기대었다가 또 실패를 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평판이 좋은 지역 내 핸디맨이나 정원 서비스, CPA에 수많은 돈을 지불했지만 제대로 행해지지 못한 경우도 꽤 있었다. 가끔 그들의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지금은 바빠서 안된다.(심지어 자기네가 사고가 나서 지금은 못간다는 말도 했다)'는 식의 변명으로 속을 들끓을 일도 많았지만, 얼굴을 붉히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잘 행해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상황을 설명하고, 서비스를 다시 요구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우리 집과 더 잘 맞는 업체를 찾기도 했고, 자연스레 나도 만족스러웠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주변에 소개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새 자동차를 구매하자마자 차량의 외관 접합이 잘 되어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서비스를 요구한다거나, finance 관계자로부터 받았던 contract에 명시되어 있지만 받지 못한 warranty에 대한 문서 요구 등을 했다. 꼼꼼하게 보지 않거나 직접 연락을 하지 않으며 '다음에 좀 제대로 보고 사지 뭐, 그 사람들도 우리 요구 맞춰서 숫자를 변경하다 보니 억지로 끼워 넣은 워런티겠지.'라며 넘겨버린다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차량을 구매하자마자 일어난 일이므로 무료로 접합과 관련된 문제는 해결이 가능했고(그래도 새 차가 그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교환하지 않고 수리를 통해 해결해야 해서 마음이 좋진 않았다), 네 번의 연락 끝에 Finance 관계자로부터 문서도 얻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처리 과정은 과거에 '멋모르고 구매했다가 훗날 생긴 문제들'로부터 얻은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 생활은 하면 할수록 느끼는 것이 '사람 대 사람'간 조율과 협상이 끊임없이 '좋게' 이뤄져야 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게 우리 원칙이야!'라며 계약서를 들이밀고 거부하거나 딱딱하게 구는 사람들도 있고, '네가 좋은 거 추천해 달랬잖아.'라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며 나 몰라라 하는 식의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계약서에는 함부로 읽지도 않고 사인을 하면 안 되고, 꼼꼼하게 읽어봐야 하며, 이미 사인한 문서도 함부로 폐기해서는 안되고 계속 여러 번 읽어보며 물어봐야 한다. 만약 이해가 안 되거나 생각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면 공손하게(따진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며 이유를 물어보며 내 이해가 잘못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도 좋다. 무작정 '잘해준 것이겠거니, 그들이 그래도 친절하던데...'라면서 웃어넘기고, '에이 됐어.' 하며 묵언하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영어는 여전히 부족하고, 때로는 문장이 버벅거리며 이어지지 않는 날도 있다. 그래도 예의 있게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완벽한 문제해결을 할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제법 만족스러운 대답과 해결책,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도 귀차니즘과 막연한 두려움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살아보기를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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