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만 했어도 20대 중반을 겨우 넘은 나이였다. 이른 결혼과 출산, 육아가 있었어도 하고자 하는 일은 다 해낼 수 있다며 대학 졸업 후에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하고자 그 이전의 전공이나 직장과는 전혀 다른 직업교육도 받고 직장의 문을 두드렸다. 그 당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3D 모델러'였다. 2d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기술을 좀 더 익혀서 뽀로로처럼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에서 일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18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3d 공부를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원은 집에서 편도로 2시간을 움직여야 있었고, 학원 수업 후에 남아서 '스터디'를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웠고, 번번이 꼬일 때마다 새벽에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포트폴리오는 완성되어서 직장의 문을 두드리는 날도 왔다.
직장 면접은 매번 좋았다. 같이 일을 해보자고 얘기도 나왔다. 그런데 인사를 나누고 나가려고 할 때 '그런데 결혼 계획이라든가 임신 계획 같은게 빠른 시일 내로는 없죠?'라는 질문에, 아이는 이미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고 조부모님과 살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지만 본인들이 부담스러워서 거절을 해야겠다고 했다. 현재 프로젝트가 끝난 뒤 한 달 뒤쯤부터 팀에 합류하는 게 좋겠다고 했던 회사에서도 끝내 채용취소를 통보받았다.
거듭되는 채용취소 통보에, 아이를 봐주시던 시부모님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격려해 주시려고 '아이있는 엄마가 보통 사람과 비슷한 직장을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라며 말씀해 주셨지만,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니 그저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러다 갑자기 이듬해에 미국에 왔다. 신분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미국에서는 나이 제한, 성별 및 아이엄마라서 거절당할 일은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또 무작정 3d 직장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첫 번째로는 '영어', 두 번째로는 '추천인 혹은 학교를 통한 취업'과 같은 벽이 있었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다가 구직을 하려고 했더라면 조금 더 수월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영어는 잘 못하더라도 뽑아주면 뭐든 밤을 새워서라도 해낼 수 있는 패기가 그 당시에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지역 내에는 애니메이션 회사가 없었고, 주를 건너 뛰어서는 애니메이션 회사가 있었다. '과연 남편과 멀리 떨어져서 온전히 내 적은 월급 가지고 아이와 둘이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면 결국엔 '아니'라는 대답이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물론 그보다 더 문제인 것은 '내가 누군가의 추천 없이도 회사에 컨택을 할 방법이나, 더 눈에 띌 수 있느냐'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미쳤다 셈 치고, 나중에 직장은 뽑히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고, 일단 회사에 갈 수 있도록 학교부터 가자'는 생각에 학교 입학처를 두드렸다.
포트폴리오를 많이 준비해서 좀 더 이름이 있는 아트스쿨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아트스쿨의 학비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아트스쿨이 있는 도시들이 대도시거나 내가 살던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막 초등학교 킨더 과정에 입학을 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면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온라인으로 학점을 조금씩 이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년 가량을 part time class로 한 과목 내지 두 과목 수업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나중에 직장을 위해서 'industrial design'쪽으로 가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나 싶었지만, 결국에는 재미있는 'animation/vfx'분야로 전과를 했다. 종이나 찰흙, 여러 소품을 이용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수업은 매주마다 과제의 자유도가 엄청나더라도 그저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공부를 하니 이전보다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그 공부의 후반에 나는 가족 형편과 아이의 잦은 학교 호출로 인해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 이후에는 삶이 끝없이 바닥을 쳤다. 꿈을 잃고 방향을 잃었다. 아침 열 시가 지나면 하루가 이미 망쳤고 끝났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집이 생겼는데, 그 집은 좁고 더러운 아파트 생활보다도 공허하고 울적했다.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하루하루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날들이었다. 그래도 3d가 마지막 나의 무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중간하게 붙잡으며 뭔가를 끄적이며 그리듯 만들었다. 목표가 없으니 만드는 결과물들이 일관되지 않았고, 좋은 퀄리티의 한, 두 개가 목표가 되지 않다 보니 애매한 것들만 조금 만들며 시간이 어영부영 지나갔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라도 보길 바라는 마음에, 컴퓨터를 들고 카페에 나가면 '멋지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그 잠깐의 칭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은 3d를 다 까먹어버렸다. 다시 마음먹고 공부한다면 금세 익힐수야 있겠지만, 이제는 굳이 거기에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디지털이지만 그림을 그리면서는 마음의 짐을 덜거나 삶을 관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3d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 둘이 더 태어났다. 아이가 더 태어나니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나를 '아이 셋 키우면서 지내느라 힘들겠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더는 내가 '꿈을 꾸는 것'에 대해 묻질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아니겠냐며, 이렇게 늙어가는 거지-라고 위안을 해주려 했던 것 같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 이제는 3d 애니메이션을 잘해서 어떤 회사에 취업하고 싶다는 그런 꿈은 아니다.
나도 어떤 분야에 프로페셔널해지고 싶다는 갈망은 늘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림 그리기에 시간을 쓰며,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읽으며 나의 생각을 더 보강하고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다.
1. 책 읽기를 많이 즐기기 때문에, 책을 리뷰하는 사람이 될까 생각도 했다. 예전에 포털에서 독서 서평을 추천받아서 쓰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직업을 삼기에는 내가 좀 더 책을 많이 읽으며 시야를 넓혀야 가능한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대해 글이나 말로 설명하는 직업을 갖고자 하는 열망도 그리 없었다.
2. 미국에 있는 아이 동화책을 많이 읽으며 한국에 있는 부모님들에게 영어 동화책을 소개하는 사람이 되어볼까 생각도 했다.
한국에서도 영어로 된 책을 빌려보는 온라인 도서관 내지 공부하는 리소스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책은 매일 쏟아지고 현지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책들이 한국에서 늘 구비가 되어 있거나 독자의 손에 쥐어지기까지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려니 일반 도서에 비교해서 유아 동화책에 내가 너무 관심도 없고 재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일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쯤되니 꾸준히 어떤 일을 해보려고 한다면 '내가 관심이 있고 재미있는 일'이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꾸준히 하는 일의 합이 '0'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것이 다시 돌아오거나 쓰임새가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에 관련된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소심해서 '결심했다'라고 확정을 짓는 말을 아직은 쓰지 못하겠다. 심지어 콘텐츠가 영상일지, 애니메이션일지, 글 일지도 아직은 모르겠다.)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건강이라는 키워드는 잠시 반짝거리고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도 오랜 예전부터 모든 사람의 관심사였고, 나이를 먹을수록 더 찾게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 분야의 가치를 돈이나 경제적으로 환산한다 하더라도 엄청나다는 생각도 든다.(마르지 않는 샘이랄까)
2. 오랜 시간 살이 찐 상태로 있어왔고, 감량을 했다가 요요를 경험해본 사람이기도 해서 '살찐 자'의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성적으로는 수많은 콘텐츠처럼 식단을 절제하고 운동에 집중하고 싶으나, 음식이 입에서 뚝 떨어지기도 힘들고,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화가 날 때도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안다.
3. 또한 돈을 들여서 운동을 하는 것에 부담이 있는 사람과 아이가 있어서 운동을 제대로 시간을 들여서 하기 힘든 엄마들에게 함께 힘내보자는 메세지를 주고받고 싶다.
4. 부모님 세대와도 함께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경험한 어른들은 부모님들과 봉사활동 때 만났던 어르신들 뿐이지만, 그 누구보다 '슬슬 걷는 운동'부터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든다.
지금은 내가 기존의 건강/다이어트 전문가보다 커리어도 없고 교육을 아직 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직업으로서 이 분야를 파고드는 것은 시간과 계획이 필요하다. 일단은 내 미래를 생각해서 나부터 바뀌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가장 처음에는 나 자신부터 바꾸는 일부터 해보려 한다.
오늘의 피드는 사실, 과거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미래의 목표를 적으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글이다.
'마흔이 다가오는 나이에 뭔가를 시작한다면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보면 결론적으로 지금 당장에는 새로운 직업을 도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울적해지려 했다. 이 고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제는 '5-6년 전의 나'처럼 어둠 속에 가둬두며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마음이 고개를 들어 나를 힘들게 하려 할 때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30도의 햇볕에서 1시간을 걷고 20분 이상 아파트 내의 체육관에서 근력운동을 했다. 만약 아이가 바깥에서도 잠을 잘 수 있으면 트레이드 밀에서 1시간을 또 뛰었을 것이다.
이쯤 되니 역시 운동이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하고 긍정적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시켜 준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을 다시 한번 확고히 하고자 이 글을 썼다. 나는 건강한 노후를 준비한 뒤, 성인병과 멀어져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며 생각하는 한 인간의 삶을 40년 더 살고 싶다. 10년도 빠르기에 40년도 분명 금세일 것이라, 좀 더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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