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은 라스베가스였다. 한인들이 주변에 제법 많았고, 차이나타운도 커서 추석 분위기를 100%는 아니더라도 추석이 있는 계절이 왔다는 것은 거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해에는 만두피를 사서 직접 만두를 빚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기도 했고, 돈가스를 여러 장 구워서 나누기도 했다. 추석 음식은 주변 외국인 지인들이 먹기에도 힘들었고, 한인마트가 있었어도 그 재료들을 추석을 보내기에 사는 것은 다소 사치스럽게(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추수 감사절을 마음껏 느낀 것도 아니었다. 미국의 명절은 그 명절에 익숙한 이들을 위한, 온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연휴였을 뿐, 해외에서 홀로 혹은 일부의 가족만 날아온 사람에게는 '가게가 열지 않는 긴 연휴'였을 뿐이었다. 어쩌다 같은 한국인 가족들과 친해졌을 때에는 호박을 긁어다가 호박죽을 끓여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외로움을 달래는 날도 있었지만, 가족들과 보내는 것과는 다른 의미였다. 처음에는 그 '한국적인 분위기'를 우연히 혹은 열심히 찾으며 즐거웠지만, 한 해가 지날수록 추석이나 설날은 먼 나라의 가족들이 보내는 연휴일뿐 나에게는 평범한 날이 되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10년이 지나는 사이에 어릴 적에 싫은 소리를 하시다가도 음식을 내어주시던 시골의 어르신들의 부고 소식도 들려왔다. 볼멘소리를 일상처럼 하셔서 그것이 우스갯소리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던 어르신, 목소리나 단어 하나에도 무게가 있어서 함께 앉아있기에 무척 불편했던 어르신, 단지 아빠의 형제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윗사람이 되어 엄마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어른까지. 불편하거나 밉던 감정이 처음에는 있었지만, 인생에서 몇 번 보지 않을 사람이 가족이라는 관계로 얽혀서 모진 소리를 하고 미운 감정을 우리 가족들에게 심어주다가 온데간데없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인생이 참 허무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꽃을 흐트러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무섭게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고, 장마와 에어컨 사이에서 씨름을 하다가 두어 달 지난 후에 더위가 물러나면 아주 잠깐 세상천지가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다가,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겨울로서 한 해가 지나가지 않던가. 그런 한 해를 여든 번만 지나면 사람의 인생은 보통 동이 나 버릴 텐데, 하루라도 좋은 것을 보고 재밌게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나쁜 감정을 주고받으며 살아야만 했을까, 하고. 어쨌든 그들은 떠났다. 고통을 주던 이들이 떠나고 난 다음이면 모든 것들이 안정을 찾을 것 같지만 그들과 함께 세월을 보냈기에, 남아 있는 이들도 이미 힘을 잃은 노인이 되어 겨우겨우 몸을 가누고 사는 정도 밖에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그 어르신들이 떠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남아있는 이들도 하나둘 또 떠날 것이라는 걸 안다. 모든 죽음은 순차적이지도 않고 예기치 못한 경우도 많기는 했지만, 어쨌든 젊음은 늘 하루씩 멀어진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7년 만에 다녀왔을 때, 엄마께서는 "나는 네 아빠나 내가 죽어도 네게는 나 죽었다는 걸 늦게 알리게 할 거야"라고 모진 소리를 하셨다. 아무래도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을 여럿 둔 딸이 자신의 마지막에도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겠지,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서운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비행기표를 예약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미어졌다. 어릴 적에는 생각도 해본 적 없거나 느낄 수 없었던 이런 '세월의 흐름' 때문에, 매 해마다 공식적인 휴일, 명절이 오는 것이 여간 반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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